지난주 스타트업레시피 집계 기준, 국내 스타트업 투자 19건 중 소프트웨어는 10.5%. 딱 2건이다. 숫자 자체는 놀랍지 않다. 놀라운 건, 이 비율이 6개월째 비슷하다는 것이다.
돈이 몰리는 곳
제조업 26.3%, 바이오·헬스케어 21.1%, 컨슈머테크 15.8%. 상위 3개 분야가 전체의 63%를 가져갔다. 소프트웨어는 네 번째인데, 한 자릿수에 가까운 비율이라 순위에 의미를 두기도 민망하다.
투자 단계도 편중돼 있다. 시리즈 B(15.8%)와 C(10.5%)가 합쳐서 26%를 넘기는데, 시드와 시리즈 A는 각각 5% 안팎. 검증된 곳에 몰아주고, 초기는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구조다.
미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PitchBook 2025 Q4 기준 미국 VC 투자 중 소프트웨어·SaaS 비중은 약 38%. 한국의 3.6배다. 물론 시장 규모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성숙도가 다르니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은 AI 인프라 위에 소프트웨어 레이어를 쌓는 스타트업에 공격적으로 베팅하고 있고, 한국은 그 레이어를 "GPT wrapper"로 분류하고 넘어간다.
"해자가 뭐예요?"
요즘 VC 미팅에서 소프트웨어 창업자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고 한다.
SaaS는 빠르게 복제되고, 오픈소스가 모든 걸 집어삼키고, "GPT wrapper"라는 단어가 투자심사역 사이에서 욕처럼 쓰인다. 반면 바이오는 임상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장벽이고, 제조업은 설비와 공급망 자체가 진입장벽이다. 투자자 논리로만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네트워크 효과, 데이터 축적, 전환 비용 — 소프트웨어의 해자는 "보이는 장벽"이 아니라 "쌓이는 장벽"이다. Slack이 처음 나왔을 때 IRC 클론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Notion도 에버노트 아류로 취급받았다. 두 회사 모두 제품 자체보다 사용자 습관과 팀 워크플로우에 깊이 침투한 뒤에야 해자가 드러났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채널톡은 단순 라이브챗으로 시작했지만, 고객 데이터와 CRM이 결합되면서 대체하기 어려운 제품이 됐다. 투자 유치 당시 "채팅 툴에 무슨 해자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거다. 지금 답은 나와 있다.
문제는 이런 해자가 증명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바이오는 임상 단계라는 가시적 마일스톤이 있고, 제조업은 양산 계약서를 보여줄 수 있다. 소프트웨어 창업자가 보여줄 수 있는 건 MAU 그래프와 리텐션 곡선인데, 초기 단계에서는 이 숫자가 투자심사역을 설득하기엔 너무 작다.
반론: 투자가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VC 투자 비중이 낮다고 소프트웨어 산업이 죽어가는 건 아니다. 토스는 시리즈 A에서 수십 곳에 거절당한 뒤 지금의 규모를 만들었고, 리멤버는 초기에 투자 없이 유저를 모았다. VC가 외면하는 시기에 살아남은 회사들이 결국 시장을 잡는 패턴은 반복된다.
다만 이건 생존자 편향이다. 투자를 못 받아서 접은 팀은 기사가 안 나온다.
그래서 어쩌라고
부트스트래핑이 답이라는 말은 쉽다. 투자 없이 월 매출 1억을 찍으면 VC가 먼저 연락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해낼 수 있는 팀이었으면 애초에 투자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순환논리다.
현실적인 선택지 세 가지. 첫째, 하드웨어나 바이오와 결합해서 "딥테크"라는 라벨을 붙인다. 실제로 제조 공정 최적화 SaaS나 신약 타겟 발굴 AI 플랫폼은 소프트웨어임에도 제조·바이오 카테고리로 투자받는 경우가 많다. 분류의 문제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둘째, 투자 게임을 포기하고 매출로 증명한다. 한국 B2B SaaS 시장이 아직 작다지만, 연 매출 10억 원대 소프트웨어 회사가 2023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셋째, 해외를 처음부터 노린다. 한국 시장 TAM으로는 설득 못 할 숫자도, 글로벌 ARR로 제시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427억 원이 19개 회사에 들어갔다. 소프트웨어 창업자라면, 그 숫자 안에 자기 자리가 있는지 냉정하게 봐야 할 때다. 자리가 없다면, 자리를 만드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