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스타트업에 3조 4,645억 원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역대 최대 규모, 전년 대비 5.2% 증가. 뉴스 헤드라인은 축제 분위기다. 그런데 솔직히 묻고 싶다 — 이 돈이 정말 스타트업을 살리고 있나?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

한국 창업기업의 5년 생존율은 33.8%로 OECD 최하위권이다. 세 곳 중 두 곳이 5년 안에 사라진다. 2025년 상반기에만 88개 스타트업이 문을 닫았고, 그중 92%가 초기 투자 단계, 69%가 업력 3년 이하였다. AI 스타트업은 3년 생존율이 56.2%로 전산업 평균 68.8%보다 한참 밑이다.

지원금이 만드는 착각

문제는 돈이 만드는 착각이다.

정부 지원금이 들어오면 제품이 아니라 지원 사업에 최적화되기 시작한다. 데모데이 발표 자료는 화려한데 실제 MAU는 세 자릿수다. IR 덱에 TAM이 조 단위로 찍혀 있지만 유료 고객은 손에 꼽는다. 자금이 들어올수록 번레이트는 올라가고, 정작 고객 문제를 풀어야 할 시간은 채용 공고 쓰는 데 날린다.

실제 사례를 떠올려 보자. 2023년에 정부 과제로 수억 원을 받아 AI 챗봇을 만든 한 스타트업이 있었다. 과제 평가에서는 A등급을 받았다. 기술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과제 종료 6개월 뒤 폐업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 그 챗봇을 쓸 고객이 없었다. 과제 기간 내내 심사위원 기준에 맞추느라 실제 사용자 인터뷰는 한 번도 안 했다.

반대 케이스도 있다. 정부 지원 없이 시작한 토스는 초기에 은행 API 연동 하나만 붙잡고 버텼다. 첫 6개월간 직접 사용자를 만나면서 송금 UX를 깎았다. 시드 투자 전에 이미 유의미한 리텐션 데이터가 있었다. 지원금이 아니라 시장이 먼저였다.

스타트업 실패 원인 1위는 현금 부족(38%)이고 2위는 시장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35%)이다. 1%p 차이라서 별개 문제처럼 보이지만, 현금이 마르는 이유가 결국 사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같은 뿌리다. 2020년 정부 재창업 지원을 받은 728개 기업을 추적했더니, 2026년 1월 기준 213곳이 다시 폐업했다. 지원받은 기업의 77%가 문을 닫았거나 사실상 1인 기업으로 쪼그라들었다.

비교해 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미국 SBIR 프로그램은 연방 기관이 실제 구매자 역할을 한다.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게 아니라 제품을 사준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진짜 고객이 생기는 셈이다. 이스라엘 혁신청은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매출 발생 후 로열티로 회수한다. 공짜 돈이 아니라는 긴장감이 작동한다.

그래도 지원을 없애자는 건 아니다

딥테크처럼 초기 시장 검증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반도체 설계, 바이오 신약, 핵융합 — 이런 분야에서는 3~5년간 매출 제로가 정상이고, 정부 자금 투입이 합리적이다. 문제는 이 논리가 모든 스타트업에 무차별 적용된다는 거다. B2B SaaS를 만드는 팀이 정부 과제에 6개월을 쓸 이유가 없고, 커머스 플랫폼이 실증특례 받으려고 1년을 기다릴 이유도 없다.

3.5조의 진짜 함정은 시장 검증을 미룰 수 있다는 환상을 준다는 거다. 돈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만들면" 고객이 올 거라고 믿는다. 안 온다. 고객 10명한테 직접 돈 받아본 경험이 정부 지원금 1억보다 값지다. 3.5조를 쓸 거면, 최소한 절반은 "이 팀이 진짜 고객한테 돈을 받아봤느냐"를 기준으로 집행해야 한다. 기술 평가 점수표가 아니라 매출 증빙이 심사 기준이 되는 날이 와야 한다.